주절주절 넋두리

노인과 바다

Joylove 2022. 7. 3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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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책을 펼치기 전에는 

'노인과 바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에 대한 느낌은

 

사람과 자연

상대적인 것과 절대적인 것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에 대한 이야기일 것 같다고 추측했다.

 

노인과 바다의 초반 부분을 읽었을 때에는 '서양판 어부사시가'가 아닌가 생각했다.

안빈낙도, 물아일체... 같은 국어시간에 배운 사자성어가 생각났다. 

읽을 수록 이 소설은 잔잔한 바다와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였다.

 

사람은 매일 자연으로 뛰어든다.

직업이 어부인 사람은 때때로 자연이 주는 시련,

폭풍, 파도, 태풍이 사람을 위협하지만

사람을 그런 시련을 견디어 내며

다시 그 자연으로 뛰어든다.

 

시련을 언제 맞딱뜨릴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므로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도 다시 자연으로 나가고,

그렇게 묵묵히 할 일을 한다.

 

노인은 자연 탓을 하지 않는다.

그저 자연이 주는 것에 대처해 나가는 것에 집중하고

인내하고 견디어 나간다.

 

소년은 노인을 존경하고 사랑했다.

그가 노인을 따라다닌 이유는 노인의 이런점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닮고 싶은 어른.

 

노인은 고기가 잡히든 잡히지 않든,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기다릴 줄 안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안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소년일지라도

 자연 탓을 하지 않는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한결 같다.

 자신의 처치가 열악한데도, 바다에서 먹을걸 찾아야 하는 새를 가여워한다.

 바다를 사랑한다. 바다를 한 인격으로 여긴다. 

 호의를 베풀어주거나, 거절하거나. 

 바다에 욕심을 투영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가 낚은 고기에게 미안해하고, 자연물에 감정이입하며 연민을 느낀다.

노인은 공자 나이에서  "마음이 하고자 하는데로 하더라도 절대 법도를 넘지않았다"하여   "종심從心" 에 딱 부합하는 찐 어른이다.

 

* 노인과 소년이 허구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뭘까. 

  가상극, 허구의 이야기가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이다.

  상수도가 없는데, 손을 씻었다.

  84일간 고기를 못잡았는데, 물고기 뱃살을 주겠다. 

  그물망이 없는데, 잠깐 빌리겠다 등... 

 

  이런 평범한 일상조차도 누릴 수 없는 어려운 환경이지만

  말이나마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고자 하는게 아닐까?

  드라마,영화,상상도 마찬가지로 허구의 이야기를 가지고 불행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해주는 처방약 같은 것.    

 

노인의 젊은 적 흑인과의 기나긴 팔씨름과 

엄청난 크기의 청새치와의 싸움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노인은 포기하지 않고 인내와 끈기로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

 

글을 읽는 내내 노인의 평온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일 것과는 반대로

생각보다 흥미진진하고 긴박감을 늦출 수 없었다.

언제 물고기가 튀어오를지, 언제 자연이 바뀌어서 폭풍이 몰아칠지

배가 너무 멀리나와서 못돌아가는건 아닌지 

상어가 노인을 덮쳐버리고 마는건지 등등... 

 

내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완전 고립무원인 상태에 놓인다면 

패닉상태일 것 같다. 다행히 노인은 긴 세월동안 쌓은 지식과 기술들로 

이틀을 꼬박 밤 새우고 상처를 입었는데도 

살아 돌아왔다. 

 

노인이 부러웠던 건, 소년의 존재였다. 

떠나간 노인을 걱정하고 애타게 기다리고, 초췌한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누군가... 

 

내가 노인이 되어서, 그런 존재가 옆에 있을까,,,? 

없을 것 같다. 

노인은 바다에 나와있는 내내 소년을 그리워햇다.

노인이 바다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기고, 돌아올 수 있는 원동력은

소년에 대한 그리움, 약속이 아니였을까,,,,? 

정말 아무도 나를 찾는 이가 없었다면 

돌아가지 않을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까,,,?

 

 헤밍웨이가 3일내리 잠도자지 않고 온갖 고생을 하며 잡은 청새치를 결국 다 상어에게 빼앗기고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설정은 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한 이유는 이것이다. 

내가 어떤 성과를 얻고자 많은 시간, 에너지, 노력을 투입하지만 

그만큼 성과가 돌아오지 않거나, 

세상이 알아주지 않거나, 

 

사람대 사람에 있어서도, 나는 그 사람에게 진심과 애정을 쏟았지만

상대방은 내 마음을 몰라줄 때가 있다. 

 

이러한 내가 들인 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땀과 눈물들이 

나에게 빈손으로 돌아올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인내를 가지고 내일을 또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또한 그러한 경험들은 빈손이 아니라 경험치가 되어 

내일을 살아가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 

 

이런 메시지를 담은게 아닐까 싶다. 

 

큰 청새치를 잡아 유유히 돌아온다는 설정을 생각해보았을 때에는 소설이 평범해보인다. 

상어에게 잡아먹힌 이 설정에 대해 소위'설정과다'라도 생각이 되지 않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어부는 아니지만 

어부라면 충분히 맞딱뜨릴 수 있는 일이라고 

이해가 되었다. 

 

아무도 나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고

내가 들인 노력이 아무것도 아닌것 처럼 보일지라도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을지라도

 

용기를 가지고, 인내를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해 설>

불운의 극치에 이른 상황에도 불구하고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긍정과 도전의 자세로 고기잡이를 하러 나간다.

자신의 경험과 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으며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다. 

꿋꿋한 인내와 용기로 고난과 역경에 맞선다. 

고독한 사내의 영웅적 인간상. 

 

힘든 처지에도 감상적 연민에 빠지지 않는다.

거대한 물고기를 잡은 것에 오만한 승리감에 도취되지 않는다. 

 

절망적 상황에서도 굴복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맞서 싸운다. 

패배를 담담히 받아들인다. 

고냔과 역경 앞에서 인간적 위엄을 간직하며 용기와 불굴의 의지로 극기의 자세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분투한다.

 

비록 늙고 지치고 패배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와 침대에 쓰러지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고 매순간 최선을 다한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한 인간앞에

성과만으로 말할 수 없는, 어떤 숙연함이 느껴진다. 

 

동시에 노인에게도 연악함과 부드러움이 있다. 

바로 바다와 자연물에 대한 따뜻한 감정이다. 

 

그의 배에 잠시 앉은 휘파람새에게 말을 걸고 

거북이를 안쓰럽게 여기고 

먹이를 구하기 힘든 몸집 작은 새에게 연민을 느끼고 

모두 친구이자 형제처럼 말을 걸고 감정을 이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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