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의 명대사, '라떼는 말이야'가 불편한 이유
꼰대.
꼰대는 인터넷에서 많이 쓰이지만, 국어사전에 올라와있는 명사이다.
[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
네이버 시사상식사전에서 보면...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학생들의 은어로 최근에는 꼰대질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로 설명하고 있다.
나에게 꼰대는 본인의 사고 안의 프레임에 갇혀
타인의 세계관을 존중하지 못해 거부하거나,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타인을 수용할 줄 모르는 불쌍한 사람이다.
꼰대는 어른,늙은이,연장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예전 세대와 현재를 살아온 연장자에게서
굳이 세대를 비교하는 말을 하는 빈도가 비교적 많아서
나이와 꼰대의 비례적 관계가 형성된게 아닐까 싶다.
꼰대는 부정적인 의미로, 특정 사람을 지칭할 때 별명처럼 많이 언급한다.
꼰대만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부정적인 느낌이 확 와닿는 말이 또 있을까.
보통 꼰대와 함께 언급대는 대사"라떼는 말이야..."
왜 저 말을 듣는 순간, 거부감과 불편한 감정이 들까? 저 말에는 '생각의 강요'가 들어가 있다.
누구나 고유한 생각과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걸 억압하고
'너는 비교우위의 만족할만한 상태임을 자각하라, 순종해라'와 같은
강요와 압박의 의미가 들어가있다.
이 사회와 내 생각이 맞으니까, 내가 산 증인이므로
너는 더 생각해볼 것도 없이 지금이 예전보다 더 나은 사회이므로 언급하지 말고 입을 다물라고 한다.
나는 저 시대가 어쨌는지 궁금하지 않다.
신분제가 있었던 조선시대와 비교해서 너는 지금 평등한 사회에 살고있으니 행복한 줄 알고, 감사해라
와 무엇이 다른가?'
"라떼는 말이야, 매일 같이 회식하고, 상사가 말하면 네!하고 고분고분 따르고..."
보지 않고, 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 어떻게 공감을 하며
난 피해를 끼친것도 아닌데, 왜 이해를 바라는 것인가?
라떼는 말이야 말 속에 본인들도 분명 불편함 감정이 있었으니
한번더 언급하는게 아닐까?
본인만 겪은 고통을 다음세대가 겪지 않는게 아니꼬운 것일까?
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 '아이고, 감사합니다.' 절이라도 하길 바라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