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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넋두리

폭풍의 언덕

by Joylove 2022.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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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매력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멀리 뒤에서 관망하는 듯한 기분으로

그 사람의 심리를 추측하거나

내가 모르는 사람들 관계를 천천히 생각해나가며

사람들 간의 관계와 심리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게 되므로

이래서 이러지 않았을까, 저래서 저렇게하지 않앗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소설 속 인물들간 심리를 생각해보며, 내 안의 자아를 넓히고

더 나아가 프레임을 깨뜨릴 수 있다는 것.

정말정말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폭풍의 언덕> 소설은 인간의 '감정'의 원초적이며

본능적인 정수 부분을 숨기지 않고 드러나므로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하면서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인물 하나하나 살펴보자면,

이 책의 주인공 '히스클리프'

이 히스클리프의 복수 이야기가 소설의 시작이자 끝이다.

 

이 히스클리프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적어도 히스클리프가 사랑받는 가정에서 자랐다면 ,

저토록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해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가정, 학교, 사회로부터

집단에 늘 속해 있음면서, 예절을 중요시하고

'사회성'을 기르도록 훈련받았다.

무엇이 좋고 나쁜지 세뇌적이다시피 듣고 혼나고

지키도록 성장했다.

 

히스클리프에게 그럴 기회가 없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릴 때부터 짐짝 취급을 당했고

학대를 당했다.

 

학대를 받은 사람이 히스클리같은 괴물이 된다면, 그 이유가 뭘지 생각해보았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잘 성장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불우했던 시절의 감정에 굴복하고 그대로 이끌린다면 이 히스클리프라는 괴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학대를 당하면, 나의 인격과 자존감이 무너지고, 내 세상이 한없이 초라해지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이러 학대받은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에게, 타인을 이해하세요, 너그러움을 베푸세요,,,

이런 이야기가 통할까?

그렇게 해야하는 이유조차 모를 것 같다.

이미 내가 나를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내 인격과 존재감이 다 뭉개지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너도 마찬가지로 이정도 당해도 돼.

왜 나만 고통을 받아야 하지?

내가 보고 느낀게 이런 세상이고, 이게 전부인데..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회피와 두려움

내가 느끼지 못했던 따스함과 행복한 삶과 마주하는 괴로움에서 더 무너져버릴 것 같은 마음도 있지 않을까?

 

히스클리프에게 게더링하이츠에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캐서린이였다.

캐서린을 위해 목숨도 바쳤을 것이다.

내 모든것과 내 삶 전부가 그녀였는데, 자신을 떠난 그녀를 보며

초라함과 충격이 복수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녀가 죽고난 후 영혼마저 사랑했으니...

 

애초에 그는 사랑없는 결혼을 했고, 자신의 아들조차 사랑하지 않았다.

그의 서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캐서린만 있었다.

 

나는 히스클리프를 보며 영화 올드보이의 유지태 연기한 인물이 생각난다. 

그가 바라던 그림대로 복수가 끝난 후의 그의 충격적인 선택을 보며,,, 

왜 그래야 했을까 

어렸을때는 이해가 되지 못했다. 

 

지금은 이해가 될듯하다. 

복수의 끝에서 유지태가 이런 대사를 한다. 

'이제 나는 무슨 낙으로 살지?'

모든 삶의 이유가 복수를 결심한 기점으로 

복수를 하게 만든 내 삶의 전부였던 어떤 대상과 

내 삶을 전부 잃게만든 어떤 대상이 모두 사라졌으니

더이상 살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평생 캐서린과 그녀의 영혼만 찾은 그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행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 눈감는 순간은 그에게 떠오른 건

캐서린과 어릴적 즐겁게 놀았떤 순간.  

괴물이 아닌 순수했던 소년인 인간적인 히스클리프의 모습이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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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사랑했지만, 에드거와 결혼한 이유를 이렇게 생각했다.

캐서린은 화목하지 않은 집안에서 자라며 말광량이로 성장했다.

그런데 에드거 집안을 보니 화목하고 따뜻한 가족애를 느끼게 된 것이다.

어린 그녀에게 느끼지 못했떤 안정감과 행복, 따스함을 느꼈을 것이다.

 

히스클리프를 사랑하지만, 학대받는 그를 보며 자라왔고 그와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잘해주고, 행복하고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에드거와의 삶이 적어도 불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영화 아저씨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너무 아는 척하고 싶으면 모른척 하고 싶어져"

히스클리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사랑하지만, 옆에 있고 싶지만

히스클리프의 고통을 그만큼 잘 알고 있기에, 그 고통을 모른척하고 싶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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