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나는 불행하다. 나는 지금 불행을 느끼고 있다. 나는 불행한 것 같다.
삶에서 행복감과 불행감 중에 어느 감정을 더 많이 느낄까?
알 수 없다.
우리는 되돌아보면 그때가 참 좋았는데,, 하고 그때가 행복했던 때임을 뒤늦게 알 때가 있다.
그 당시에는 그 일상이 너무 당연해서 자각을 못하였고
지금의 시선에서 그때를 바라보니 다르게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불행감은 직관적이고 행복감보다 이유가 명확하므로
비교적 행복감보다는 불행감이 삶에서 더 많이 차지하는 것이 수도 있겠다.
불행은 어디서 오는 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보통 불행감은 '비교' '결핍'에서 오는것 같다.
사람이 태어나서 아무도 없는 세계에 매일 자급자족하며
나무에 올라가 과일을 따먹고, 물고기를 잡아먹고,
의식주 생활을 그럭저럭하고, 신체적인 고통을 겪지 않는 이상
불행감이라는 감정은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이 있다고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외로움, 우울감이 생겨날 수 있을까?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집단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가정, 지역, 국가...
타인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릴때부터 타인들의 말, 평가를 들으며 자라나고
자연스레 내 주위와 내 존재에 대해 비교하게 된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 욕심나는 것이 타인이 가지고 있을 때.
'결핍'을 자각하는 순간 불행을 느낀다.
예를 들면,
나는 배고픈 상태일 때, 지나가는 패스트푸드 가게 안에서는 햄버거를 맛있게 먹고있는 사람을 볼때.
나는 혼자이지만,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내 또래를 볼때
나는 말을 조리있게 잘 하지 못하지만, 유창한 언변을 가진 사람을 볼 때.
나는 노력해도 원하는 결과를 못하였지만, 두루두루 좋은 성과를 주변사람을 볼 때...
여기서 오는 결핍과 무력감...
꽤나 고통스럽다. 생생한 고통을 느낀다.
그 다음 이것을
이러한 나의 감정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부정적인 방향,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게 놔둘지는 내 몫이다.
그저 가만히 놔둔다면 나는 그저 그런 사람.
나는 거기까지밖에 될 수 없는 사람... 이라고 깨끗이 포기하고
더이상 생각하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그럴 수 있을까?
다음에도 똑같은 감정을 느끼며 똑같은 고통을 겪지 않을까?
결핍으로부터 자극을 받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키를 잡는 건
중요하다. 바로 여기로부터 삶의 주체성을 가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결핍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비록 지금의 나는 못나고 찌질하지만, 노력해보겠어.
꾸준히. 나의 한계치까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가진 것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는 것은 금물이다.
상대방은 나보다 좋은 조건에 있었으니까,
좋은 환경에 있었으니까,
처음부터 잘 태어났으니까 등...
평가절하해서는 안된다.
이런 생각은 내 세계관을 좁히고 프레임에 가두는 아주 위험항 생각이다.
모든 결핍을 충족시킬 수 없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런 것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과, 아예 결핍을 외면해버리는 것은
천지차이 일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결핍의 상태. 나의 감정상태를
성찰하는 것이 성장의 발판이자,
삶의 주체성을 잃지 않는 중요한 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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